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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도 문학관이 부러운 이유_ 박설희 시인 /경기일보 (2017.11.16(목))
  • 글쓴이 관리자
  • 작성일 2018-08-23 11: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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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카페] 기형도 문학관이 부러운 이유
 박설희 webmaster@kyeonggi.com 노출승인 2017년 11월 15일 21:52     발행일 2017년 11월 16일 목요일     제23면


기형도(1960∼1989) 문학관이 며칠 전에 문을 열었다고 한다. 기형도 시인이 태어난 곳은 인천시 옹진군 연평도지만 문학관이 들어선 광명시 소하동은 그가 다섯살 때 이사온 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가족과 함께 살던 곳이다. 


그의 시 ‘안개’에 “아침 저녁으로 샛강에 자욱이 안개가 낀다”의 샛강은 안양천이고 “열무삼십단을 이고” 엄마가 갔던 시장도 광명에 있다. 광명시가 유족에게서 기탁 받은 130여 점의 유품 등으로 개관하게 된 문학관은 전시실과 자료실을 갖춘 지상 3층 건물이다. 문학관을 열기까지는 십여 년 전부터 꾸준히 추진해온 시민들의 힘도 컸다.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중략)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기형도 <빈집> 부분 지금 이 시간에도 기형도의 유고시집 <입 속의 검은 잎>을 읽으며 시인의 꿈을 키우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습작기에 내가 읽은 그는 감각적인 이미지와 우수로 가득 찬 도회인이었다. 그러나 지금 다시 읽은 기형도는 철저히 일상에서 소재를 취하고 그것을 체화하여 이미지로 만들었다. 적어도 무엇을 어떻게 쓸 것인가를 명확히 알았고 땅에 발을 디딘 채 80년대라는 시공간을 그려내고 있다. 우리가 기형도에게서 취해야 할 점은 시적 짜임새나 표현의 묘미, 분위기가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담을 것인가 하는 주제의식과 작품을 향한 치열성과 성실성이다. 지역 곳곳에 그곳 출신 문인들을 기리는 문학관이 많이 들어서고 있다. 문학은 인간과 세계에의 총체적 탐구다. 철학이 이성으로 인간을 탐구한다면 문학은 이성, 감성뿐 아니라 오감을 다 사용하여 인간을 탐구한다. 문학을 공부한 사람이 총을 들고 불특정 다수를 향해 총을 쏠 리가 없다.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이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혈안이 될 수는 없다. 문학의 기저에는 인간과 세계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이 사회를 유지하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이 문학을 포함한 예술임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논리에 따라 정책을 입안하고 세부계획을 짜는 경우가 많다.내가 살고 있는 수원에는 문학관이 없다. 인구 120만명이 넘는 경기도청 소재지, 화성이라는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을 가지고 있는 수원에 웬만한 시에서는 다 있는 문학관 하나 없는 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우울해진다.


나혜석, 박팔양, 홍성원 등 이 지역 출신의 쟁쟁한 문인들은 꽤 있는데 그들을 기릴 공간조차 없는 것이다. 이런 형편이니 원주 토지문화관이나 서울 연희창작촌처럼 집필을 할 수 있는 전문 공간은 꿈도 못 꿀 일이다. 인문학 도시를 표방하고 있는 수원에서 과연 어느 정도로 인문학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문학과 문학인들을 배려하는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지 묻고 싶다. 개별적인 문학관이 힘들다면 ‘수원문학관’을 만들어 이 지역 출신 문인들을 아울러 기리는 방법도 있다. 그 예로 목포시의 선례를 살펴볼 수도 있을 것이다. ‘목포문학관’에는 극작가 김우진, 소설가 박화성, 극작가 차범석, 평론가 김현의 자료실이 각각 독립되어 있다. 그것을 보고 자란 청소년들은 자신의 고향에 대한 자긍심을 평생 지니고 살게 될 것이다. 정신적 자산으로서의 문학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사회야말로 밝고 성숙한 사회임을 믿는다.


 박설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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