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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푸른 저녁, 기형도를 기리다/채널예스(2019.03.14(목))

관리자 │ 2019-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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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도 30주기 낭독의 밤


기형도 시인이 세상을 떠난 지 30년의 세월이 흐른 어느 푸른 저녁, 그를 사랑한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2019.03.14)




"거리의 상상력은 고통이었고

나는 그 고통을 사랑하였다"

- 기형도 (『입 속의 검은 잎』시작 메모)


스물 아홉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시인이 있다. 그의 이름은 기형도. 첫 시집이 유고 시집이 되었으나 그의 시들은 세월이 흐를수록 점점 더 또렷하게 기억되고 있다.198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기형도 시인은 첫 시집 출간을 앞둔 1989년 3월 7일, 종로의 한 극장에서 뇌졸중으로 숨진 채 발견됐다. 그리고 같은 해 5월, 첫 시집 「입 속의 검은 잎」이 출간됐다. 시인은 세상에 없었지만, 그의 시를 본 수많은 청춘들은 기형도라는 이름을 마음에 새겼다.


기형도 시인이 세상을 떠난 지 30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를 기리며 지난 3월 7일 ‘다리 소극장’에서 기형도 30주기 낭독의 밤이 열렸다. 이번 낭독의 밤은 기형도 시인을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참석이 가능한 자리로 마련되어 빈 자리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수많은 관객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본격적인 행사에 앞서 인사말을 통해 정과리 문학평론가는 “우리는 아직도 ‘왜?’라고 질문한다. 이 질문은 어떤 단서도 구하지 못했고 오로지 사후적으로만 재구성되었다. 그 작업은 1990년대 이후 한국문학의 방향성을 가늠하는 일과 직결되었다”며 “그는 이제 장치에서 자원이 되었다”는 말을 전했다. 문학과지성사 이광호 대표는 소극장을 빼곡하게 메운 관객들을 바라보며 “기형도 시인이 여러분을 이끌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그가 여기 함께 있다.”고 인사를 건넸다.


무대 위의 불이 꺼지고, 낭독이 시작됐다. 변영주, 심보선, 이병률 시인은 각각 기형도 시인의 시 「쥐불놀이」, 「포도밭 묘지2」, 「입 속의 검은 잎」을 낭독했다. 뒤이어 강성은, 신용목, 정한아 시인은 기형도 30주기를 맞아 펴낸 젊은 시인 88인의 트리뷰트 시집에 쓴 자신의 시 「겨울에 갇힌 한 남자에 대하여」, 「어느 푸른 저녁의 시인에게」, 「야곱의 사다리」를 들려주었다.



이외에도 창작집단 ‘독’의 독회극이 중간중간 펼쳐져 낭독의 밤을 다채롭게 했다. 기형도 시인의 시 「기억할 만한 지나침」, 「진눈깨비」, 「빈집」, 「조치원」은 조정일, 천정완, 유희경, 김태형 작가에 의해 연극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기형도 시인이 그러했듯, 짧은 독회극들은 일상의 부조리와 절망감을 그려내 마치 시를 입체적으로 낭독하는 듯한 느낌을 부여했다. 이후 뮤지션 권나무의「밤눈」 낭독과 음악 공연을 끝으로 기형도 30주기 낭독의 밤이 저물었다.


기형도, 영원히 기억될 이름


낭독의 밤에 참여한 변영주 감독과 다섯 명의 시인들은 시를 낭독하고 난 뒤, 기형도 시인의 시에 얽힌 자신의 추억과 생각을 소개하며 그를 떠올렸다. 이들이 들려준 추모의 말들을 소개한다.


영화감독 변영주


“20세기에 쓰여진 가장 21세기 같은 문장들이 아마 기형도 시인의 시집이 아닐까 생각한다. 개인적 시선이 세상과 만나는 순간, 깊이를 더하는 한 구절 한 구절들이 나에게는 늘 신선했다. 시대의 깃발이 되어주는 것은 문학이라 생각한다. 영화는 문학이 세운 깃발에 감사하며 그 안에서 만들어진 담론을 대중에게 좀 더 친숙하게 나타내는 것이다. 영화를 고민하고 만드는 입장에서, 나에게 깃발이 되어준 한국문학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다.”



시인 심보선


“기형도 시인의 시를 읽을 때마다 두려운 것이 있다. 내 시가 기형도 시인의 시와 너무도 유사하다는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나의 독창성이라는 환상이 무너지는 느낌이 드는데, 이 시를 읽으며 ‘어쩌면 기형도 시인도 그렇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시에는 ‘포도압착실’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굉장히 이국적인, 아니 무국적인 공간의 환상이 빚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기형도 시인의 시도 당대의 온갖 영향력 속에서 빚어낸 국적 없는, 장소 없는 상상의 영역이 아닐까 싶다. 기형도 시인의 시를 읽을 때마다 ‘내가 그의 영향에서 자유로운 적이 있었던가’ 싶어 한 편으로 무섭고, 다른 한편으로는 나처럼 근원 없는 종자도 시를 쓸 수 있다는 위안을 느끼게 된다.”


시인 이병률


“「입 속의 검은 잎」은 기형도 시인의 첫 시집이고, 그는 세상에 시집을 한 권밖에 내놓지 않은 시인이다. 시집임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확고하고 선명한 시의 획을 운용한 시인의 족적으로, 우리에게 중요한 답안지 역할을 해왔다고 생각한다. 나는 어떤 시인을 흠모하거나 질투하지 않은 시인은 시를 잘 쓸 수 없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다. 기형도는 이에 부합하는 인물 중 한 사람으로 내 가슴 속에 자리매김하고 있다.”


시인 강성은


“때로는 내가 카프카와 기형도를 동일시 하고 있구나 싶어서 두렵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 시 안에서 새로운 삶을 이어가게 해주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을 혼자 하며 웃을 때가 있다. 요즘은 두 가지 마음이 든다.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과, 다른 이야기 속에서 계속 쓰고 싶은 마음. 나에게 그런 상상의 시간과 공간을 부여해준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시인 신용목


“우리가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든 각자 겪어야 할 절망과 청춘이 있을 것이다. 기형도 시인은 그걸 견디게 해준다. 나이를 먹고 시간이 흘러도 마찬가지다. 가끔씩 되돌아오는 청춘을 견뎌야 할 때가 있는데, 그것 역시 그의 시가 견딜 수 있도록 도와준다.”



시인 정한아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과거에는 생일선물로 시집을 주고받는 것이 유행처럼 번졌던 시절이 있었다. 자신의 마음을 노골적이지 않게 표현하고, 감각을 자연스레 드러낼 수 있는 선물로 시집만한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가장 많이 받은 선물은 기형도 시인의 시집이었다. 언젠가 해외로 오래 여행을 떠났을 때 배낭에 유일하게 들어있던 한국어로 된 책도 그의 시집이었다. 타지에서 책을 펼쳐 그의 시들을 읽었던 기억은 지금도 나에게 또렷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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