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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학]비극적 세계를 향해 던진 치열한 언어/세계일보(2019.03.29(금))

관리자 │ 2019-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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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뇌의 청춘' 살다 간 기형도/ 1980년대 젊은이들의 자화상/ 낯설고 그로테스크한 서사/ 한 시대의 悲歌로 깊이 각인



지난 7일 우리는 기형도의 30주기를 맞았다. 그를 생각할 때마다 자연스럽게 윤동주가 떠오르는데, 두 사람은 다닌 대학이 같고, 유고시집 한 권으로 시인으로서의 자기 존재를 세상에 알렸으며, 엇비슷한 나이에 타계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의 유고시집은 한국 시 전체에서도 단연 우뚝한 기념비로 남았다. 그 기념비에는, 때이른 죽음에 대한 애도는 물론, 이렇게 시 잘 쓴 시인을 우리가 몰랐구나 하는 뒤늦은 발견의 흔적 같은 것이 새겨져 있었을 것이다. 하기는 이들이 발견되기 전에는 한국 시에 ‘윤동주적’인 것도 ‘기형도적’인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유고시집 이후로 우리도 ‘이런 시인’을 가지게 됐노라는 기쁨이 이들에 대한 각별한 관심과 반향으로 이어져 갔을 뿐이다.


기형도는 1990년대 이후 가장 폭넓고 강력한 감염을 받은 계열체를 파생시킨 시사적 사례이다. 그 맥은 ‘신서정’에서 ‘미래파’에까지 이어져 있으며, 최근 활달하게 각개 약진하는 새로운 서정시의 전위들에게도 일정하게 닿아 있다. 이러한 진원지가 됐던 ‘입속의 검은 잎’(1989)은 타계 후 3개월여 만에 출간됐는데, 발문을 쓴 김현이 그의 시를 귀납해 ‘도저한 부정성’의 세계라고 집약한 이래 이 시집은 가난한 청춘을 통과해온 이들에게 한 시대의 비가(悲歌)로 깊이 각인되기 시작했다. 당대 현실에 대한 일정한 비판 의식과 시인 스스로의 내면에 대한 정직한 투시의 토양으로 안착됐던 것이다.


그는 한 ‘시작 메모’에서 “나는 한동안 무책임한 자연의 비유를 경계하느라 거리에서 시를 만들었다. 거리의 상상력은 고통이었고 나는 그 고통을 사랑하였다. 그러나 가장 위대한 잠언이 자연 속에 있음을 지금도 나는 믿는다. 그러한 믿음이 언젠가 나를 부를 것이다. 나는 따라갈 준비가 되어 있다”고 적었다. 그리고 그는 이 치명적 잠언 속으로 스스로 빨려 들어갔다. 안개 자욱한 하늘은 따라갈 준비가 돼 있는 그를 냉큼 불렀다. 비극적 세계를 향해 던진 그의 치열했던 언어는 한 권의 유고시집 형식을 갖추게 됐고, 이 시집은 그의 오롯한 삶과 죽음과 시를 우리로 하여금 깊이 기억하게끔 해주었다. 그만큼 그의 시는 가난했던 유년기와 청년기를 살아간 당대 독자의 경험과 감각을 여실하게 보여준 시대적 축도(縮圖)로 다가왔고, 이 점은 두고두고 후배 시인의 폭넓은 자양이 됐을 것이다.


기형도는 일찍이 가난과 가족의 죽음 등으로 인한 공포와 상처를 경험했다. 투병 중인 아버지, 생계를 책임진 어머니와 누이, 세상을 등진 누이와 삼촌 등은 기형도의 세계관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러한 어둑한 유년에 대한 기억은 ‘위험한 家系·1969’에서 선명한 가족사를 동반한 채 펼쳐진다. 가난에 대한 가장 구체적인 서사를 담은 명편으로 기록될 이 산문시편은 기형도의 죽음에 대한 의식과 세계에 대한 부정성을 형성하게 한 원체험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 안에서 우리는 영민했던 한 소년이 고통과 가난을 통해 성숙해가는 드라마를 만나게 되고, 마지막에 ‘불빛 불빛 불빛’이 생각을 밝히는 면도 놓칠 수 없게 된다. 그런 양면성 때문에 독자들은 기형도를 통해 절망도 하고 위안도 받았을 것이다. 이때 기형도는 20대 청년이었지만 의식 한구석에서 늙음, 소멸, 죽음, 저편 등 자신의 나이와 어울리지 않는 차원을 열어갔던 것이다.


무언가 그로테스크(奇)하고 조금 일그러져 있으면서도 ‘어떤 길을 지향해가는 듯한 기형도의 이름은’ 비록 통계에 잡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심장에 와서 호소하는 힘을 남다르게 가지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기형도문학관’이라고 세 글자를 딱 써놓고 문학관에 붙여 놓으니까, 역시 그의 이름이 고유명사를 넘어 일반명사까지 되는구나 하는 생각도 해본다. 생전의 기형도는 시집 제목으로 ‘정거장에서의 충고’와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를 생각해 뒀다고 전해진다. 이제 그가 우리에게 들려준 ‘충고=중얼거림’은 새로운 시대의 독자들로 더욱 호소력 있게 번져갈 것이다. 그렇게 짧은 생의 치열한 기록으로 남은 그의 시를 읽어보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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