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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인천을 읽다] 빈 집 -기형도/인천일보(2019.04.08(월))

관리자 │ 2019-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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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사람은 두 번 죽는다. 한 번은 육체적으로 죽으며, 한 번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모두 지워졌을 때 또 다시 죽는다. 지난 주말 경기도 광명에 개관한 <기형도문학관>을 다녀왔다. 그는 젊디젊은 2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요절시인이다. 그런 연유로 문학관에 전시된 그의 발자취는 한 젊은 영혼의 치열한 한 시절이 오롯이 스며들어 있었다. 그의 몇 안 되는 유작들과 유품들은 이곳에 발걸음을 멈춘 여행객들에게 그의 눈빛 같은 따스한 손을 건네며 말을 걸어왔다. 그가 간 지 30여년이 지났으나 그는 여전히 살아 있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우리에게 손을 내민다. 참 이상도 하다. 이미 죽은 사람이 이렇게 따뜻하다니…

이것을 시의 힘이라고 어찌 말하지 않을 수 있을까. 시인 기형도는 인천 연평도에서 태어나 유아기를 보내다 부친의 직장이동으로 광명 소하리에서 성장했다. 연세대 국문과와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문단에 나온 그는 자기만의 독보적인 시세계를 구축한 몇 안 되는 시인 중 하나로 꼽힌다.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우울한 풍경을 그로테스크하고도 생소한 이미지를 통해 시의 미학적 승화를 이뤄냈다. 그를 추모하는 문학관이 인천에 세워지지 않은 것이 다소 아쉬웠으나, 어느 곳에 세워진들 무슨 상관인가. 깊은 사유를 선물하고 떠난 시인을 언제든지 찾아가 만날 수 있는데…잘 있거라, 긴 여행을 떠났다가 금세 다시 돌아올 것만 같은 그의 목소리가 가까이서 들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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