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및 참여

자료실

언론보도

기형도를 새로이 바라보는 네 가지 관점 제시...기형도 30주기 추모 심포지엄 개최/뉴스페이퍼 문학정보(2019.03.11(월))

관리자 │ 2019-04-17

HIT

141



[뉴스페이퍼 = 김상훈 기자] 1989년 3월 젊은 나이로 세상을 뜬 기형도 시인은 사후 상징적 인물이 되었으며, 시인의 독특한 시 세계와 요절은 기형도를 일종의 신화로 자리 잡게 하기 충분했다. 2019년 3월 7일은 기형도 시인의 30주기로, 기형도 시인을 추모하는 다양한 행사가 마련된 가운데 기형도를 ‘신화에서 역사로’ 만들고자 하는 심포지엄이 연세대학교에서 개최됐다.


3월 7일 오후 2시 연세대 문과대학 백주년기념홀에서 열린 ‘기형도 시인 30주기 추모 심포지엄’은 연세대학교 인문학연구원과 문학과지성사가 주최했으며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후원했다. 이번 심포지엄은 ‘신화에서 역사로. 기형도 시의 새로운 이해’라는 제목으로 열렸으며, 인사말을 전한 문학과지성사 이광호 대표는 “심포지엄의 제목이 ‘신화에서 역사로’인데 역사로 간다는 것은 지금 여기의 역사로, 지금 여기의 감각으로 호명된다는 의미일 것이다.”고 설명했다. 이어 “기형도가 역사로 간다는 것은 기형도가 다시 시작되는 것으로 이해해주시길 바라며 이번 심포지엄이 기형도의 다른 역사가 시작되는 심포지엄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날 발표에는 정명교(연세대), 유성호(한양대), 오연경(고려대), 강동호(인하대) 등 4명이 참여했으며 각각 토론자로 조연정(서울대), 이영준(경희대), 김응교(숙명여대), 하재연(고려대) 등 4명이 참여했다. 이날 발표자들은 각각 기형도를 기존에 바라보지 않았던 다른 방식으로 조명하였으며, 기형도 신화를 해체하고 기형도의 시를 새롭게 이해하고자 하였다.





- 음성적 - 문자적 대립의 시사에서 바라본 기형도


정명교 교수는 한국 시사에서 존재했던 청각과 시간의 대립, 시각과 공간의 대립을 음성적/문자적 대립으로 다시 구분하고, 기형도를 한국 시사에 다른 형태로 자리매김하고자 했다. 먼저 정명교 교수는 “기형도 시인은 ‘부정성의 세계’ 즉 죽음의 세계를 대변하는 시인으로 흔히 읽혀져 왔다. 반대의견도 있었으나 압도적인 부정성의 의견에 의해 묻히고 있었다.”며 “글을 새롭게 이해할 여러 다른 안목이 필요한 때가 오지 않았나 생각한다. 한국 시사의 소리와 문자 사이의 대립의 연장 선상으로 이해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문자적인 시란 간단히 설명하면 눈으로 읽을 때만 이해할 수 있는 시이다. 청각성에 수반되지 않으며 이상의 작품이 문자적 시에 해당한다. 정명교 교수는 “문자적인 것의 출현은 무엇보다 ‘봉건’과의 결별만큼은 청각적인 것에 비해 압도적인 위세를 보였다.”며 특히 김수영을 비롯한 4.19 세대가 문자성을 한 세대의 이념의 표상으로 두었다고 설명했다. 이는 “한글이 자기 세계의 형성과 표현, 그리고 확장의 장치였기 때문”으로 정명교 교수는 “이상에게 문자적인 것이 ‘신생’으로 가는 가속기였다면, 후자들에게는 여기에 ‘집단적 자기’라는 동행자들이 덧붙여졌다.”고 말했다.



80년대에 이르러 독재 정권이 연장됨에 따라 한국 시사에는 두 방향의 움직임이 일게 된다. 정명교 교수는 한쪽에서는 “한국의 민족주의가 문자주의와 교응하고 있었다면, 이 문자의 허위성 혹은 모자람에 대해 성찰하게” 되는 움직임이 등장했으며, 다른 한쪽에서는 “민족주의는 민중주의와 결합한다. 문자적 측면에서 볼 때 이 결합은 문자의 교범적 강화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정 교수는 “문자의 허위성 혹은 모자람에 대한 성찰은 그 자체 이중의 분화를 겪는다.”며 각 방향의 대표자로 이성복과 황지우를 언급했다. 이성복은 제도화한 언어와 저항하려 했으며 황지우는 문자를 시각으로 되돌려 문자에서 의미를 제거하고자 한다.


정명교 교수는 “‘문자’적 시각에서 보면 기형도의 시는 한국시가 겪은 문자의 이 긴 여정의 끝자락에 위치해 있는 듯이 보인다.”며 “기형도에게 특히 영향을 준 것은 김수영 – 이성복의 연결선에서의 문학적 기도”라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이성복의 세대가 문자에 절망하고 구어성을 시에 도입하려 했다면 기형도는 문자에 절망했음에도 불구하고 문자적인 것을 회복하려 했다고 보았으며, 이를 ‘빈집’을 비롯한 기형도의 시들을 통해 살펴보았다.






- 유성호 교수, 기형도와 윤동주 비교 통해 의미 깊어


유성호 교수는 기형도와 윤동주를 비교해보는 방식으로 기형도를 새롭게 주목해보고자 했다. 유성호 교수는 “윤동주와 기형도의 동류항이라면 우리는 유년 향상, 대학 시절, 종교 경험, 성장 문법, 사랑과 이별의 청춘 시절, 가난과 이산, 가족사, 고백 어조, 현실 탐색 등을 꼽을 수 있을 것”이라며 대학시절, 사랑의 시학, 유년 시절의 형상, 서사적 브랜드 순서로 기형도와 윤동주를 비교해보았다.



사랑의 시학과 관련해서 윤동주는 사랑시에 집중하지 않았는데 이는 2인칭보다는 1인칭, 즉 ‘나’ 혹은 ‘내 마음’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유성호 교수는 “윤동주는 우리 시사에서 서정시가 고백체 예술의 가장 대표적인 양식임을, 그 누구보다 진정성 있는 언어로 보여준 사례”라고 보았다. 한편 기형도는 사랑시라고 부를 시편을 많이 남겼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빈집’이다. 유성호 교수는 “우리가 살펴야 할 것은 ‘빈집’ 앞에 ‘그 집 앞’이라는 시편이 있었다.”며 두 작품을 연결해야 ‘빈집’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형도와 윤동주를 비교했을 때 차이를 보이는 점 중 하나는 유년시절에 관한 것이다. 유성호 교수는 “기형도의 미학 안에 그려진 비극적 세계의 출발점은 유년 시절의 가난과 청년기의 죽음 의식이라는 두 가지 축”이며 유년 시절 가난과 가족의 죽음 등은 기형도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고 설명했다.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쓰러진 후 어머니가 생계를 책임지는 과정은 시인의 작품군으로 이어지는데 그 대표작은 ‘엄마걱정’이다. 한편 동시 창작에 진력하기도 했던 윤동주의 어린 시절은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 초판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유성호 교수는 “윤동주의 유년은 가난의 흔적이 사실적으로 각인된 기형도와는 달리 다소 낭만화한 서정의 뒷받침, 곧 동화적 발상에 의해 재현되었다.”고 설명했다.


유성호 교수는 “기형도는 1980년대 주류였던 민중시와는 달리 죽음, 도시, 기억 등을 호출함으로써 투쟁과 희망보다는 죽음과 절망을 미학화하는데 집중했다.”며 “그의 시는 낯설고 불안한 세계에 반응하는 섬세한 자아의 내면을 비정하고도 차분하게 보여주었다.”고 설명했다. 


한편 윤동주는 “‘나’를 끊임없이 토로하고 고백한 일종의 ‘자기 폭로’로서의 예술을 보여준다. 윤동주는 끊임없는 부끄럼과 고통의 힘으로 자기 자신을 드러내고 스스로를 들여다보았다.”고 전했다. 또한 윤동주의 또 다른 특징에는 ‘또 다른’ 차원에 대한 추구, 갈망이 있었다. 유성호 교수는 “고향에 돌아와서도 ‘또 다른 고향’을 찾고, 참회록을 써놓고도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쓰고자 하며,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또 다른 십자가’를 받아들인다.”며 “‘또 다른’ 차원으로의 존재 전환에 대한 갈망과 희원은 우리 시사에서 매우 보기 드문 영역”이라고 보았다.






- 오연경 교수, 기형도의 '거리두기' 전략과 '사후 주체' 살펴


고려대 오연경 교수는 “그간의 기형도 연구는 시에 나타난 부정적 세계관이나 도시적 일상에 대한 비판 의식 등 주로 시의 주제적 측면에 집중”되어 있었으며 “시 전반을 관통하는 형식적 특성이나 시적 전략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미흡했던 것도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오연경 교수는 기형도의 형식적 특성 및 시적 전략을 ‘사후주체’와 ‘거리두기’로 명명하고 이를 기형도의 작품으로 설명했다.


오연경 교수는 먼저 “유년을 회상하는 기형도의 시는 소재에 있어서 개인사의 고백과 연관될지언정 그것을 다루는 발화 방식에 있어서는 오히려 반(反)고백의 성격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며 “그의 시에서 유년의 추억은 에피소드와 대사 중심으로 무대화되거나, 장면화되며, 과거의 시공간을 소환하여 현재화하는 방식은 자아의 고백적 진술보다는 카메라의 보여주기에 가깝다.”고 보았다. 오 교수는 “기형도는 내면-고백이라는 1인칭 장르 문법의 극복 방안을 일관되게 모색해 왔다고 보는 것이 적합할 것”이며 “그 모색을 추동하는 원동력은 1인칭의 동일화 작용에 저항하는 ‘거리두기’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거리두기’라는 전략에서 생성된 기형도의 시적 주체를 ‘사후(事後) 주체’라 명명했다. 사후 주체의 진술은 회상과 다른데, 회상이 과거의 시간이 마음속에 재생되도록 내버려 두거나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시간을 그리워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오연경 교수는 사후주체는 지나간 사건을 현재의 관점에서 소환하여 그것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재구성하며, 그렇게 재구성하는 행위 자체를 표면에 드러낸다고 설명했다.


‘거리두기’와 ‘사후주체’를 중심으로 기형도의 작품을 살펴본 오연경 교수는 “기형도 시의 형식적 특성에 주목할 때, 그의 시가 내면-고백이라는 1인칭 장르 문법의 극복 방안을 일관되게 모색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라고 전했으며 또한 “기형도는 시인과 화자를 분리하는 목소리의 고안에 몰두했으며, ‘쓴다’는 행위에 대한 메타적 인식과 ‘쓰인 것’의 가상적 텍스트성을 최대한 드러내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 기형도의 산문과 증언으로 본 '희망에의 의지'


강동호 교수는 죽음, 절망의 층위에서 연구되어 왔던 기형도에게서 ‘희망에의 의지’를 조명해보고자 했다. 먼저 강 교수는 기형도 읽기에서 ‘희망’보다 ‘도저한 부정성’에 집중하게 만드는 세 가지 층위를 살펴보고 그 층위의 타파 방향을 살펴보았다.





첫 번째는 기형도 시에서 희망이 지닌 성격과 위상의 모호성이다. 희망은 기형도 시에서 빈번히 등장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불투명하며, 희망의 분위기와 상충되는 듯한 정황을 부각시키기도 한다. “희망은 기형도 시 내부의 간극을 심화시키며, 이 간극은 기형도의 희망에 대한 해석학적 일관성을 교란한다.”는 것이다. 강동호 교수는 기형도의 시를 발표 순서대로 찬찬히 읽게 된다면 간극에 관한 시적 자의식의 변화가 나타난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초기와 달리 후기에는 점차적으로 객관적 묘사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이며, 이는 간극에 대한 시적 자의식과도 긴밀한 관련이 있어 보인다는 것이다. 강 교수는 “희망과 절망의 간극이 초기의 기형도에겐느 ‘고통스러운 삶’과 ‘시쓰기의 어려움’을 토로하게 만든 부정적 원인이었다면, 점차적으로 절망은 희망은 견인하고 성찰하는 중요한 원리이자 방법으로 거듭나기 시작한다.”며 “비관주의적 절망과 미래에 대한 막연한 전망 사이의 봉합될 수 없는 간극이야말로 기형도가 언급한 희망이라는 이름의 원리라고 추측해 볼 것”이라고 전했다.


두 번째는 기형도의 실제 죽음이다. 기형도는 ‘희망을 포기하는 것’을 유예시키는 입장을 고수했으나, 기형도가 예기치 못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며 그의 텍스트는 ‘희망에 대한 포기’로 해석되게 되었다. 김현 평론가는 “기형도의 시를 다시 읽어보면, 그는 젊어 죽을 수밖에 없었던 시인”이며 “기형도의 시엔 그런 낙관적인 미래 전망이 거의 없다.”고 보았고, 김현 평론가의 해석은 기형도의 작품이 해석되는 방향을 결정지은 것이다.


그러나 강동호 평론가는 “기형도의 시에 낙관적인 미래 전망은 없지만, 전망에 대한 비전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며 “기형도의 전망은 부재하는 것이 아니라 ‘안 보이는 전망’의 형식으로, ‘보이는 심연’ 속에 있다.”고 보았다. 강동호 교수는 “기형도가 죽음을 유예하면서까지 도착하려 했던 ‘어느 곳’이라는 시공간을 죽음으로 오독하기 쉽다. 그곳으로 향하는 원리와 방법을 조명할 수 있다면, 우리의 해석은 자연스럽게 김현의 결론과 조금은 다른 곳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마지막은 기형도의 죽음이 의미하는 상징성과 90년대라는 전환기적 상황에 있다. 기형도의 죽음은 80년대를 20대의 나이로 살아갔던 세대들에게는 한 시대의 종언을 고지하는 상징으로 받아들여졌다. “기형도의 죽음과 함께 끝나버린 80년대”라는 상징은 “90년대에 기형도의 시를 향유하는 세대들의 독서 감각을 주조했던 주된 문학사적 프레임”으로 작용했으며, 나아가 ‘기형도 신화’를 낳은 근거가 되기도 한다. 강동호 교수는 “기형도 신화가 90년대에 구축되었기에, 기형도 신화를 역사화하기 위해서는 80년대의 시적 현실뿐 아니라 90년대라는 시간대를 해체적으로 재구성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세 가지 층위를 살펴본 강동호 평론가는 기형도의 산문을 통해 기형도가 제시한 희망의 정체를 모색하고자 하였으며, 또한 기형도의 시의 면밀한 분석을 통해 희망의 양태를 형식적 차원에서 조명하고자 하였으나 지면이 부족하여 발표되지는 못했다.


강동호 교수는 “기형도가 살아서 두 번째 시집을 펴낼 수 있었다면 그는 90년대라는 새로운 시간 속에서 자신의 땅을 발견하기 위한 본격적인 여정을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미래는 오지 않았고, 그가 희망과 함께 언급했던 ‘좀더 넓은 땅’은 미지의 영역으로 90년에 남겨져 버렸다. 그의 처절한 절망이 견인했던 희망은 신화적 열기 속에서 소멸해버렸다.”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이전글 [시, 인천을 읽다] 빈 집 -기형도/인천일보(2019.04.08(월))
다음글 기형도의 사후 주체와 거리두기 전략/교수신문(2019.04.25(목))